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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생활문화

겨울철 길거리 군고구마를 기다리던 기억, 추위 속 기다림까지 맛있었던 이유

곰곰애기 2026. 8. 23. 17:39

목차


    겨울밤 길거리 군고구마 노점에서 김이 피어오르고 ‘겨울철 길거리 군고구마를 기다리던 기억’이라는 제목이 크게 보이는 모습
    추운 겨울밤, 골목 끝에서 피어오르는 김과 달큰한 냄새를 발견하면 군고구마가 다 익을 때까지 그냥 지나치기 어려웠다. 그 기다림부터 이미 겨울 간식의 시작이었다.

    겨울이 되면 이상하게도 길을 걷는 속도를 늦추게 만드는 냄새가 있었다. 멀리서부터 달큰하고 구수한 향이 퍼져 오면 어디쯤 군고구마를 굽고 있는지 눈으로 먼저 찾게 됐다. 바로 사 먹을 수 있는 간식이 많지 않았던 시절, 길거리 군고구마는 추운 날 일부러 기다릴 이유가 충분한 먹거리였다. 따뜻한 불기운 주변에 서서 아직 덜 익었다는 말을 들으면 아쉬우면서도 쉽게 자리를 뜨지 못했다.

    내가 기억하는 군고구마의 맛에는 기다리는 시간이 함께 들어 있다. 길가에서 손을 주머니에 넣었다 뺐다 하며 차례를 기다리고, 굽는 통에서 피어오르는 김과 냄새를 바라보던 순간은 먹는 시간보다 길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 겨울철 길거리 군고구마를 떠올리면 노랗게 익은 속살보다 먼저 차가운 공기, 따뜻한 화로 주변의 온기, 그리고 언제 다 익을까 바라보던 마음이 함께 생각난다.

    군고구마는 보이기 전에 냄새로 먼저 찾아왔다

    겨울 골목에서 군고구마를 먼저 알려 준 것은 냄새였다. 눈앞에 노점이 보이기 전부터 구수한 냄새가 바람을 타고 오면 자연스럽게 발길이 그쪽으로 향했다. 겨울 공기는 차가웠지만 군고구마를 굽는 곳 가까이에는 묘하게 다른 온도가 있었다. 뜨거운 열기와 고구마 껍질에서 올라오는 향이 섞이면서 그 주변만 작은 휴식처처럼 느껴졌다.

    당시 길거리 먹거리는 지금처럼 주문과 동시에 일정한 시간 안에 완성되는 방식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군고구마는 굽는 데 시간이 필요했고, 먼저 들어간 고구마가 어느 정도 익었는지에 따라 바로 받을 수도 있고 한참 기다려야 할 때도 있었다. 그래서 노점 앞에 도착했다고 바로 먹는다는 보장은 없었다. 이미 잘 익은 것이 남아 있으면 운이 좋은 날이었고, 새로 굽는 중이라면 향을 맡으며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어두운 겨울밤 거리에서 멀리 군고구마 노점의 따뜻한 불빛이 보이고 사람들이 걸어가는 모습
    노점이 눈에 들어오기 전부터 구수하고 달큰한 냄새가 먼저 골목을 채웠다. 그 냄새가 나는 쪽으로 자연스럽게 발길을 돌리던 것도 겨울철 군고구마의 재미였다.

    냄새뿐 아니라 굽는 모습도 기다림을 붙잡아 두었다. 뚜껑을 열거나 고구마를 뒤집을 때 잠깐 보이는 뜨거운 김, 검게 그을린 껍질, 열기를 피해 손을 움직이는 장면을 보고 있으면 시간이 조금씩 흘렀다. 어느 것이 먼저 익을지 알 수 없는데도 괜히 내가 받을 고구마를 마음속으로 골라보기도 했다. 굵고 큰 것이 좋을지, 작아도 빨리 익은 것이 좋을지 고민하는 순간부터 이미 먹는 즐거움은 시작되고 있었다.

    그래서 군고구마를 기다린 기억은 단순히 간식을 사기 위해 줄을 선 기억과 조금 다르다. 냄새를 발견하고, 굽는 곳을 찾고, 아직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하나의 작은 겨울 행사처럼 이어졌다. 따뜻한 냄새가 차가운 골목을 채우면 겨울이 왔다는 사실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고, 그 익숙한 향만으로도 마음이 먼저 군고구마 쪽으로 가곤 했다.

    화로 앞에서 손을 녹이며 기다리는 시간도 맛의 일부였다

    군고구마 앞에서의 기다림은 손끝으로 먼저 느껴졌다. 가만히 서 있으면 발끝과 손이 금세 차가워졌고, 주머니에 손을 넣어도 오래 지나지 않아 다시 추위가 느껴졌다. 그렇다고 군고구마가 익기 전에 돌아가기는 아쉬웠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뜨거운 것을 손에 쥘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추위를 참고 자리를 지키게 됐다.

    특히 거의 다 익은 것처럼 보일 때부터 기다림은 오히려 더 길게 느껴졌다. 굽는 사람이 고구마를 한 번씩 눌러보거나 위치를 바꾸는 모습을 보면 이제 곧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몇 분이 더 지나면 괜히 마음이 조급해졌다. 다른 사람이 먼저 받아 가는 모습을 보면 내 차례가 언제 올지 더 궁금해졌지만, 이미 군고구마 냄새를 맡은 뒤에는 다른 간식으로 마음을 바꾸기도 쉽지 않았다.

    기다리는 동안 손에 쥔 돈을 몇 번이나 확인하는 일도 자연스러웠다. 정확한 가격은 시기와 장소마다 달랐겠지만, 어린 시절에는 내가 가진 돈으로 몇 개를 살 수 있는지가 늘 중요한 문제였다. 하나만 사도 충분한지, 함께 먹을 사람이 있다면 몇 개가 필요한지 생각하다 보면 기다리는 시간이 작은 계산 시간이 되기도 했다. 좋은 크기의 고구마가 내 차례까지 남아 있기를 바라며 앞사람이 무엇을 받아 가는지도 눈여겨보게 됐다.

    지금은 기다림을 줄여주는 서비스가 익숙하지만, 그때의 군고구마는 기다리는 시간이 맛과 분리되지 않았다. 바로 손에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에 기대가 커졌고, 추운 곳에 서 있었기 때문에 따뜻함이 더 크게 느껴졌다. 조금 불편하고 조금 지루했지만 그 시간이 있었기에 군고구마를 받는 순간이 더 반가웠다. 겨울 길거리에서 몇 분을 버티며 기다렸던 경험 자체가 군고구마의 맛을 완성하는 한 부분이었다.

    종이봉투를 받아 드는 순간 추위가 잠깐 잊혔다

    마침내 군고구마를 받으면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맛보다 온기였다. 종이봉투나 종이에 싸인 고구마를 손에 들면 차갑던 손바닥이 금세 따뜻해졌다. 너무 뜨거워 한 손에 오래 들고 있기 어려우면 양손 사이로 번갈아 옮기며 식히기도 했다. 추위 때문에 움츠러들었던 손이 군고구마 하나 때문에 풀리는 느낌은 집에서 접시에 담아 먹을 때와는 다른 즐거움이었다.

    껍질을 벗기는 순간도 기억의 중요한 부분이다. 겉은 검게 그을리고 마른 듯 보여도 안쪽에는 노랗고 촉촉한 속살이 숨어 있었다. 반으로 갈랐을 때 올라오는 김 때문에 바로 한입 베어 물기 어렵고, 입김을 불어가며 조금씩 식혀야 했다. 기다림이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먹기 직전에도 또 잠깐 기다려야 하는 셈이었지만, 그때는 빨리 먹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두꺼운 겨울 장갑을 낀 손에 갓 구운 군고구마 여러 개가 담긴 갈색 종이봉투가 들려 있는 모습
    마침내 종이봉투가 손에 건네지면 군고구마의 맛보다 먼저 뜨거운 온기가 느껴졌다. 너무 뜨거워 손을 번갈아가며 들던 순간까지 겨울 군고구마의 기억으로 남아 있다.

    거리에서 먹는 군고구마는 먹는 방법도 조금 달랐다. 손에 묻은 껍질을 털어가며 걷기도 하고, 너무 뜨거우면 종이를 다시 접어 쥐기도 했다. 한입 베어 물면 단맛과 포근한 식감이 추위 속에서 더 선명하게 느껴졌다. 바깥 공기는 차가운데 입안과 손은 따뜻한 그 대비가 겨울 군고구마의 가장 큰 매력이었다.

    그때의 군고구마는 맛있는 간식을 하나 샀다는 만족으로 끝나지 않았다. 기다린 시간과 차가운 손, 종이봉투의 온기, 껍질을 벗길 때 올라오던 김까지 하나의 경험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비슷한 고구마를 집에서 구워 먹어도 길거리에서 기다려 받아 들었던 느낌과 완전히 같지는 않다. 음식 자체보다 그것을 손에 넣기까지의 장면이 함께 기억 속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군고구마가 보이면 비로소 겨울이 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군고구마 장수나 노점은 겨울을 알아차리게 하는 풍경 중 하나였다. 날씨가 충분히 추워져야 자연스럽게 생각나는 먹거리였고, 차가운 저녁길에서 따뜻한 연기와 불빛을 보면 계절이 바뀌었다는 사실이 실감났다. 늘 같은 장소에 있었는지, 이동하며 팔았는지는 지역마다 달랐겠지만 길거리에서 군고구마를 만나는 경험 자체는 겨울과 강하게 연결돼 있었다.

    그래서 한동안 보이지 않다가 다시 군고구마를 파는 모습을 발견하면 반갑기도 했다. 꼭 먹지 않는 날에도 연기와 냄새가 나는 곳을 지나치면 겨울다운 풍경을 만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반대로 날이 풀리고 그런 모습이 사라지면 어느새 계절이 지나가고 있다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지금은 계절과 상관없이 다양한 간식을 쉽게 구할 수 있지만, 길거리 군고구마는 추위와 함께 찾아오는 계절의 먹거리라는 인상이 강했다.

    그 계절성 때문에 군고구마를 기다리는 일도 반복되는 겨울의 기억이 됐다. 해마다 추워지면 예전에 먹었던 맛이 생각나고, 길에서 비슷한 냄새가 나면 다시 기다려보고 싶어졌다. 한 번의 특별한 사건이라기보다 여러 겨울에 걸쳐 비슷한 장면이 겹쳐지면서 하나의 추억이 만들어진 것이다. 정확히 어느 날 무엇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아도 추운 길에서 군고구마가 익기를 기다렸다는 감각은 선명하게 남아 있다.

    눈이 남은 어두운 겨울 골목 끝에 따뜻한 불빛을 내는 군고구마 노점이 보이는 모습
    차가운 골목 끝에서 군고구마 노점의 불빛이 보이면 그제야 겨울이 제대로 찾아온 것처럼 느껴졌다. 먹지 않고 지나치는 날에도 그 불빛과 냄새는 계절을 알려주는 익숙한 풍경이었다.

    이런 기억은 거리 풍경이 바뀐 뒤에 더 특별하게 느껴진다. 먹거리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것을 만나는 방식과 기다리는 방식은 달라졌다. 예전에는 길을 걷다가 우연히 냄새를 맡고 멈춰 서는 일이 자연스러웠고, 기다리는 동안 주변 사람들과 같은 열기와 냄새를 공유했다. 군고구마 한 봉지는 겨울밤의 간식이면서 그 시절 거리 생활의 일부였다.

    겨울철 길거리 군고구마를 기다리던 기억이 오래 남는 것은 군고구마가 특별히 화려한 음식이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재료와 먹는 방식은 단순했지만, 그것을 만나고 기다리고 손에 쥐는 과정이 계절과 단단히 연결되어 있었다. 차가운 길에서 달큰한 냄새를 따라가고, 아직 덜 익었다는 말을 들으면 조금 더 서 있고, 마침내 뜨거운 봉투를 받았을 때 손끝부터 풀리던 느낌까지 모두 겨울의 일부였다.

    요즘에도 군고구마를 먹을 수 있지만 예전처럼 길 한가운데서 냄새를 먼저 발견하고 언제 익을지 기다리는 경험은 점점 귀해졌다. 그래서 나는 군고구마를 떠올릴 때 맛만 기억하지 않는다. 추웠지만 돌아가기 싫었던 몇 분, 뜨거워서 손을 번갈아가며 들었던 봉투, 입김을 불며 첫입을 기다리던 시간이 함께 떠오른다. 바로 그 기다림이 있었기에 평범한 고구마 한 개가 겨울을 대표하는 따뜻한 기억으로 남을 수 있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