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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에서 딱지치기를 하는 아이들 옆에 많은 딱지를 들고 있는 남자아이와 ‘딱지를 많이 가진 친구가 부러웠던 어린 시절’이라는 제목 문구가 함께 보이는 모습
학교가 끝난 뒤 친구들이 모여 딱지를 꺼내 놓으면 자연스럽게 시선이 가던 때가 있었다. 누군가는 손바닥만 한 딱지 몇 장만 가지고 있었고, 누군가는 주머니나 작은 상자 안에 두툼한 딱지를 한가득 넣고 다녔다. 내가 유난히 부러워했던 쪽은 늘 후자였다. 딱지를 많이 가진 친구가 하나씩 펼쳐 보일 때면 그 개수 자체가 대단해 보였고, 그중 내가 처음 보는 그림이나 색이 섞여 있으면 괜히 더 오래 바라보게 됐다.
어른이 된 뒤 떠올리면 종이 몇 장의 차이였지만 어린 마음에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딱지는 놀이에 쓸 수 있는 도구이면서 모으는 재미가 있는 물건이었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시작하게 만드는 소재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많이 가지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 친구가 조금 더 능숙하고 여유 있어 보였다. 그래서 딱지가 적던 날에는 게임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가진 것의 차이가 크게 느껴지곤 했다.
딱지의 개수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었다
어린 시절 딱지를 많이 가진 친구가 부러웠던 가장 큰 이유는 단순히 종이가 많아 보였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딱지치기를 할 때 가진 딱지가 많으면 선택할 수 있는 폭도 넓어 보였다. 어떤 것을 먼저 내놓을지, 아끼는 것은 따로 남겨둘지, 조금 덜 아까운 것으로 승부를 볼지 스스로 고를 수 있었다. 반대로 가진 수가 적으면 한 장을 잃는 일도 크게 느껴졌다.
당시 아이들 사이에서 딱지의 개수는 작은 자랑거리이기도 했다. 두툼한 묶음을 꺼내 손에 쥐는 모습만으로도 주변 친구들의 시선이 모였고, 한 장씩 넘겨보며 서로 어떤 딱지가 있는지 구경하는 것만으로 시간이 잘 갔다. 잘 치는 실력과 별개로 많이 모았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의 성취처럼 보였다. 나는 그런 친구를 볼 때마다 '나도 저만큼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특히 여러 장을 가진 친구는 게임에서 지더라도 다시 꺼낼 딱지가 남아 있었다. 그래서 승부를 더 여유롭게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가진 것이 적을 때는 한 번의 패배가 내 딱지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컸지만, 많은 친구에게는 그저 여러 장 중 한 장일 수 있었다. 어린 마음에는 그 차이가 꽤 크게 느껴졌다.
지금 돌아보면 딱지의 개수는 돈의 많고 적음처럼 정확한 가치를 나타내는 숫자는 아니었다. 하지만 놀이판 안에서는 분명한 차이를 만들었다. 많이 가진 친구는 고를 수 있었고, 나눌 수도 있었고, 때로는 다른 친구와 바꿀 여유도 있었다. 그 선택권이 부러움의 핵심이었다. 단순히 '많다'는 사실보다 원하는 방식으로 놀 수 있는 자유가 더 커 보였기 때문에 나는 그 두툼한 딱지 묶음을 유난히 부러워했던 것 같다.
많기만 한 것보다 어떤 딱지를 가졌는지도 중요했다
딱지는 개수만 많다고 모두 같은 가치를 가진 것처럼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림이 유난히 멋있거나 색이 선명한 것, 친구들 사이에서 흔히 보이지 않는 디자인은 한 장만 있어도 눈에 띄었다. 그래서 딱지를 많이 가진 친구가 묶음을 펼쳐 보이면 자연스럽게 가운데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을 찾게 됐다.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종류가 보이면 더 부럽게 느껴졌고, 그 한 장을 기준으로 친구의 딱지 묶음 전체가 더 대단해 보이기도 했다.
상태도 은근히 중요했다. 모서리가 심하게 접히거나 표면이 많이 닳은 딱지보다 비교적 반듯하고 깨끗한 딱지는 더 아껴야 할 것처럼 보였다. 딱지치기에 자주 쓰는 것과 모아두고 싶은 것을 구분하는 아이들도 있었고, 보기 좋은 딱지는 승부에 쉽게 내놓지 않는 분위기도 있었다. 이런 차이는 단순한 놀이 도구였던 딱지에 '소장하는 재미'를 더해 줬다.

친구들이 서로 딱지를 보여 주는 시간에는 작은 비교가 자연스럽게 생겼다. 누구에게 같은 그림이 여러 장 있는지, 누가 처음 보는 종류를 가지고 있는지, 어느 딱지가 더 두껍고 단단해 보이는지를 말하며 각자의 기준으로 평가했다. 정확한 공식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아이들 사이에서는 나름의 선호가 빠르게 만들어졌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딱지를 많이 가진 친구는 단순히 수량이 많은 친구보다 훨씬 부러웠다.
이런 마음은 지금의 수집 취미와도 조금 닮아 있다. 필요한 만큼만 가지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모양을 하나씩 채워가는 과정 자체가 즐거웠다. 다만 어린 시절에는 그 감정을 거창하게 '수집'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냥 갖고 싶고, 바꿔보고 싶고, 내 묶음에도 저런 딱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그래서 친구가 새 딱지를 꺼낼 때마다 놀이가 시작되기 전부터 이미 작은 구경거리가 생겼다.
딱지치기는 가진 것을 걸고 즐기는 승부였다
딱지가 많으면 부러웠지만, 결국 딱지의 재미는 모아두는 데서 끝나지 않았다. 바닥에 내려놓고 상대 딱지를 뒤집으려 힘껏 내리치는 순간이 있어야 했다. 이때 가진 딱지가 많다는 것은 승부에 참여할 기회가 많다는 뜻처럼 느껴졌다. 한 장을 잃어도 다시 도전할 수 있고, 상황에 따라 다른 딱지를 꺼낼 수도 있었다. 그래서 딱지 수가 적은 아이에게 많은 딱지는 단순한 재산보다 놀이를 오래 이어갈 수 있는 여유에 가까웠다.
딱지치기를 지켜보고 있으면 어떤 친구는 유난히 손목을 잘 쓰고, 어떤 친구는 바람이 들어갈 틈을 노리는 것처럼 신중하게 딱지를 내려치곤 했다. 정확한 방식은 지역이나 아이들 무리에 따라 달랐지만, 중요한 것은 한 판마다 긴장감이 있었다는 점이다. 내 딱지를 내놓은 순간부터 상대방 차례가 끝날 때까지 바닥에 놓인 종이 한 장에 시선이 집중됐다.

이겼을 때의 기쁨이 컸던 것도 그 때문이다. 단순히 승부에서 이긴 것을 넘어 내 딱지 묶음이 한 장 늘어나는 결과가 따라왔다. 반대로 아끼던 딱지를 잃으면 숫자 하나가 줄었다는 것 이상의 아쉬움이 생겼다. 특히 어렵게 얻었거나 마음에 들던 딱지라면 다시 가져오고 싶다는 마음 때문에 다음 승부를 더 열심히 하기도 했다.
그래서 많이 가진 친구를 부러워하면서도 그 딱지가 어떻게 늘어났는지가 궁금했다. 많이 사서 모았는지, 교환으로 얻었는지, 딱지치기에서 이겨 늘렸는지는 각자 달랐을 것이다. 하지만 어린 눈에는 결과적으로 두툼해진 묶음이 먼저 보였다. 그 묶음 속에는 여러 번의 승부와 교환, 고르고 아껴둔 시간이 함께 쌓여 있었고, 그런 과정까지 포함해 딱지를 많이 가진 친구가 대단해 보였던 것이다.
부러움은 결국 나도 모아보고 싶다는 마음이 되었다
친구의 많은 딱지를 부러워하는 마음이 꼭 속상함으로만 남았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나도 더 모아야겠다'는 작은 목표가 되기도 했다. 새 딱지가 생기면 쉽게 잃지 않으려고 따로 챙기고, 마음에 드는 것은 더 소중하게 다루게 됐다. 여러 장이 쌓이면 펼쳐 놓고 다시 정리해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감이 생겼다. 처음에는 친구의 묶음을 보고 시작한 마음이 어느새 내 것들을 모으는 재미로 바뀌었다.
딱지는 특별한 보관함이 없어도 얼마든지 모을 수 있는 물건이었다. 작은 상자나 가방 한쪽에 넣어두었다가 친구들을 만나면 꺼내 놀 수 있었고, 집에서는 다시 한 장씩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 개수가 조금씩 늘어나는 것이 눈에 잘 보였다. 어제보다 몇 장 많아졌다는 사실만으로도 괜히 든든했고, 언젠가는 나도 친구들 앞에서 두툼한 묶음을 꺼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돌이켜보면 그 부러움에는 경쟁심과 동경이 함께 있었다. 친구보다 더 많이 갖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지만, 그보다 '나도 저만큼 재미있게 놀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더 가까웠다. 딱지가 많으면 더 오래 게임을 할 수 있고, 친구와 바꿀 것도 많고, 구경할 것도 많아 보였다. 어린아이에게 그 풍성함은 꽤 큰 매력이었다.
그리고 그 경험은 가진 물건의 값보다 그 물건과 함께한 시간이 더 오래 남는다는 것도 보여 준다. 지금 손에 당시 딱지가 남아 있지 않더라도, 많이 가진 친구의 묶음을 바라보던 마음이나 한 장을 얻었을 때의 기쁨은 기억 속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부러움 때문에 시작한 관심이 놀이와 수집으로 이어지고, 그 과정에서 친구들과 보낸 시간이 추억이 됐다. 결국 내가 부러워했던 것은 딱지의 숫자만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재미와 선택, 함께 놀 수 있는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에는 아주 작은 차이도 크게 느껴졌다. 누군가는 딱지를 몇 장 가지고 있었고, 누군가는 손에 다 쥐기 어려울 만큼 많이 가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부러워했던 감정은 지금 기준으로 보면 소박하지만, 당시에는 분명 진지했다. 어떤 딱지가 더 멋있는지 비교하고, 한 장을 아껴두고, 승부에서 얻거나 잃으며 마음이 오르내렸던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딱지를 많이 가진 친구에 대한 기억은 단순히 '나는 적게 가지고 있었다'는 아쉬움으로 남지 않는다. 그 부러움 덕분에 나도 모으는 재미를 알았고, 종이 한 장에도 자기만의 의미를 붙이던 어린 마음을 떠올릴 수 있다. 값비싼 장난감이 없어도 딱지 몇 장만 있으면 친구들과 한참을 놀 수 있었던 시절. 많이 가진 친구를 바라보며 느꼈던 그 작은 부러움까지 포함해서, 딱지는 어린 시절의 경쟁과 우정을 가장 선명하게 떠올리게 하는 물건 중 하나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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