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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사전을 처음 손에 넣었을 때만 해도 나는 꽤 그럴듯한 공부 계획을 세웠던 것 같다. 모르는 영어 단어가 나오면 바로 찾아보고, 국어사전과 한자사전도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쓰면 두꺼운 사전을 들고 다닐 필요가 없다는 점이 무엇보다 편리해 보였다. 작은 화면과 빽빽한 자판, 여러 기능이 들어 있는 메뉴를 하나씩 눌러 보는 일 자체도 신기했다. 학교와 집에서 모두 꺼내 쓸 수 있는 개인 학습도구라는 느낌도 강했다.
그런데 막상 전자사전에 익숙해지고 나니 내가 가장 자주 찾아 들어간 메뉴는 사전이 아니라 게임 쪽이었다. 공부를 위해 마련한 기기였지만 어느 순간부터 단어를 찾는 시간보다 간단한 게임을 붙잡고 있는 시간이 더 길어졌던 기억이 난다. 문제집을 풀다 모르는 단어를 검색하려고 켰다가 정작 게임 한 판을 하고 다시 책으로 돌아오는 식이었다. 전자사전을 떠올리면 공부한 내용보다 작은 화면 속 게임이 먼저 생각나는 이유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공부용으로 산 전자사전, 처음에는 사전 기능부터 봤다
전자사전은 처음부터 놀기 위한 물건으로 보이지 않았다. 책상 위에 올려 두면 문제집이나 참고서와 잘 어울렸고, 수업이나 숙제를 하다가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바로 검색할 수 있다는 점이 분명한 장점이었다. 종이사전처럼 가나다순이나 알파벳 순서를 따라 여러 장을 넘길 필요 없이 몇 글자만 입력하면 뜻이 나타났고, 필요한 경우 관련된 표현을 이어서 살펴볼 수도 있었다. 여러 권의 사전을 작은 기기 하나로 대신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당시에는 꽤 특별하게 느껴졌다.
처음에는 새 기능을 하나씩 살펴보며 정말 공부에 자주 쓰게 될 것처럼 생각했다. 그런데 메뉴를 이리저리 눌러 보다 보면 계산이나 메모 같은 부가기능과 함께 가볍게 즐길 수 있는 기능도 눈에 들어왔다. 그중 게임은 유난히 손이 자주 갔다. 처음에는 어떤 기능이 들어 있는지 확인한다는 생각으로 한두 번 실행해 보는 정도였는데, 조작법이 어렵지 않고 바로 시작할 수 있으니 조금씩 사용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내 기억 속 전자사전의 재미는 바로 이런 모순에 있었다. 겉으로 보면 공부를 위한 기기인데 사용하는 사람에게는 작은 오락기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분명히 있었다. 책상 위에 그대로 두어도 전혀 놀고 있는 물건처럼 보이지 않았고, 사전 검색을 하다가 몇 번만 메뉴를 이동하면 다른 기능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점도 묘하게 편했다. 처음 전자사전을 사용하게 된 명분은 분명 공부였지만, 익숙해지고 난 뒤 무엇을 더 자주 실행했는지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단어 검색보다 게임 메뉴를 더 자주 찾게 됐다
전자사전에 들어 있던 게임은 지금 기준으로 보면 아주 단순한 편이었다. 화면도 작고 표현할 수 있는 그래픽도 제한적이어서 화려한 장면이나 복잡한 조작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그럼에도 몇 개의 버튼으로 움직이거나 점수를 올리는 식의 간단한 규칙만으로도 충분히 재미가 있었다. 별도의 게임기를 준비하지 않아도 책상 위에 있던 전자사전만 열면 바로 시작할 수 있다는 점도 게임 메뉴를 자꾸 찾게 만드는 이유였다.
짧게 한 판만 하고 다시 공부하려는 마음으로 켰다가 기록을 조금 더 올려 보고 싶어 한 판을 더 하는 식으로 시간이 늘어나곤 했다. 특히 단순한 게임일수록 다시 시작하기가 쉬웠다. 실패해도 긴 설명을 다시 읽을 필요가 없고 몇 초 만에 처음부터 도전할 수 있으니 멈출 시점을 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기능을 시험해 본다는 핑계가 있었지만 나중에는 어느 메뉴에 게임이 있는지 손이 기억할 만큼 익숙해지는 경우도 있었다.

단어 하나를 찾으려고 전자사전을 켰다가 검색을 마친 뒤 게임 메뉴로 이동하고, 정작 원래 하던 공부는 잠시 멈춰 있는 장면도 그 시절 전자사전을 떠올리면 함께 생각난다. 그렇다고 전자사전의 게임이 전용 게임기보다 뛰어났던 것은 아니다. 재미의 핵심은 성능보다 예상하지 못한 공부 도구 안에 게임이 들어 있다는 데 있었다. 화려한 콘텐츠가 아니어도 공부 사이에 몰래 끼어드는 작은 오락이라는 상황 때문에 더 재미있게 느껴졌고, 결국 사전 기능보다 게임 메뉴를 더 빠르게 찾는 일이 생겼다.
친구들과 점수와 조작법을 비교하는 재미도 있었다
전자사전 게임의 재미는 혼자 기기를 들여다보는 것으로만 끝나지 않았다. 비슷한 전자사전을 가진 친구들이 모이면 어떤 기능이 들어 있는지 서로 확인하고, 자신이 발견한 게임이나 조작 방법을 알려 주는 모습도 흔했다. 누구의 전자사전에 어떤 기능이 있는지 비교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관심이 사전보다 부가기능 쪽으로 옮겨가기도 했다. 기록이 남는 게임이라면 점수를 비교하는 것만으로도 작은 경쟁이 되었고, 한 사람이 게임을 하고 있으면 옆에서 화면을 들여다보는 사람도 생겼다.
전자사전은 작고 휴대하기 쉬웠기 때문에 쉬는 시간처럼 짧은 시간에도 꺼내기 좋았다. 본격적으로 무언가를 설치하거나 준비할 필요 없이 기기를 열고 메뉴만 찾아가면 됐기 때문에 잠깐 즐기기에 알맞았다. 친구가 새로운 방법을 알아내면 옆에서 그대로 따라 해 보고, 잘되지 않으면 어떤 버튼을 눌러야 하는지 서로 알려 주기도 했다. 게임 자체는 단순했지만 여럿이 함께 화면을 보고 있으면 그 작은 기능 하나가 꽤 긴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그래서 전자사전을 떠올리면 단어 뜻을 찾던 장면만 남아 있지 않다. 누군가 작은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거나, 기록을 한 번 더 올려 보려고 버튼을 빠르게 누르는 모습처럼 당시 학생들의 생활 풍경도 함께 생각난다. 기능의 목적만 보면 사전과 학습이 중심이었지만 실제로 사용하는 학생들은 그 안에 숨어 있는 재미를 찾아내고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즐겼다. 공식적인 사용 목적과 실제로 가장 재미있게 사용했던 방법 사이에 차이가 있었다는 점이 전자사전을 더욱 기억에 남는 물건으로 만든 것 같다.
공부하는 척 게임을 하며 주변 눈치를 보기도 했다
전자사전으로 게임을 할 때는 이상하게도 공부할 때보다 주변을 더 잘 살피게 됐다. 문제집을 펼쳐 놓고 기기를 켜면 겉으로는 단어를 검색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화면 안에서는 전혀 다른 일이 진행될 수 있었다. 누군가 가까이 오는 기척이 느껴지면 게임을 멈추거나 다른 메뉴로 이동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도 자연스러웠다. 공부를 하려고 책상에 앉아 있으면서 작은 전자사전 화면에만 집중하고 있는 모습 자체가 지금 떠올려 보면 꽤 재미있다.
오랫동안 게임을 하다 보면 정작 공부할 때 사용할 전자사전의 상태도 신경 쓰였다. 필요한 순간에 기기를 쓰지 못하면 곤란하니 적당한 선에서 멈춰야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재미있는 순간에는 그 적당한 선을 넘기기도 했다. 전자사전 게임은 스마트폰 게임처럼 수많은 선택지가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이상하게 반복해서 하게 됐다. 주어진 기능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그 안에서 재미있는 것을 찾아 오래 붙잡고 있었던 셈이다.

이런 사용법을 생각하면 전자사전은 당시의 학생 생활을 꽤 잘 보여주는 기기였다. 스마트폰처럼 원하는 앱을 마음대로 설치하는 물건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미 들어 있는 기능 가운데 재미있는 것을 찾아내는 과정 자체가 놀이가 됐다. 실제로 단어를 검색하거나 숙제를 할 때 유용하게 사용한 순간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 더 선명하게 남은 것은 게임 메뉴를 찾아 들어가던 손놀림과 주변을 살피던 순간이다. 사전이라는 이름과 실제 사용 모습 사이의 간격이 컸기 때문에 오히려 더 재미있는 추억으로 남은 것 같다.
전자사전은 분명 공부를 편하게 해 주기 위해 사용하던 기기였다. 모르는 단어를 빠르게 찾고 여러 종류의 사전을 작은 기기에서 살펴볼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그런데 내 기억 속에서는 그런 기능만큼이나 게임을 찾아 실행하던 시간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공부하다 잠깐 쉬려고 켰다가 한 판을 더 하고, 단어 검색보다 게임 메뉴의 위치를 더 정확하게 기억했던 경험까지 포함해서 전자사전은 그 시절의 생활도구였다.
지금은 휴대전화 하나만 있어도 사전과 번역, 게임을 모두 이용할 수 있어서 전자사전 같은 별도의 기기가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기능이 제한적이었던 만큼 작은 게임 하나를 발견했을 때의 재미는 오히려 컸다. 전자사전을 공부보다 게임에 더 많이 사용했던 기억을 떠올리면 좋은 기능보다 예상하지 못한 사용법을 먼저 찾아내던 학생 시절의 모습까지 함께 생각난다. 그래서인지 내 기억 속 전자사전은 공부기기이면서 동시에 아주 작은 게임기 같은 모습으로 오래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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