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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가 끝난 뒤 친구들과 골목이나 공터에 모이면 주머니 속 구슬부터 꺼내던 시절이 있었다. 반짝이는 유리구슬을 바닥에 늘어놓고 선을 긋거나 원을 만든 뒤 누구부터 시작할지 정하면 별다른 장난감 없이도 한참을 놀 수 있었다. 손가락으로 구슬을 튕겨 상대의 구슬을 맞히는 순간에는 작은 골목이 경기장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구슬치기가 항상 웃으며 끝난 것은 아니었다. 누구의 구슬이 먼저 맞았는지, 선을 넘었는지, 방금 움직인 구슬이 원래 어디에 있었는지를 두고 의견이 엇갈리면 놀이 분위기가 순식간에 달라졌다. 지금 생각하면 구슬 몇 개를 놓고 벌어진 작은 다툼이지만, 당시에는 어렵게 모은 구슬과 내 실력이 걸린 문제라 쉽게 양보하기 어려웠다.
친구들과 구슬치기를 하며 생긴 다툼을 떠올리면 승패보다 규칙을 어떻게 정하고 서로 다른 주장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가 더 기억에 남는다. 처음에는 억울하다는 마음이 앞섰지만 결국 다시 함께 놀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말만 고집할 수 없었다. 작은 구슬 하나를 사이에 두고 다투고 화해했던 경험은 어린 시절 친구 관계의 모습을 잘 보여 주는 장면이었다.
구슬 하나를 따내는 재미가 경쟁심까지 키웠다
구슬치기는 준비물이 많지 않았다. 각자 가지고 있던 구슬 몇 개와 흙바닥만 있으면 시작할 수 있었고, 나뭇가지나 신발 끝으로 선과 원을 그어 그날의 놀이판을 만들었다. 문제는 게임에 사용하는 구슬이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아이들에게는 소중한 수집품이기도 했다는 점이었다. 색이 예쁘거나 크기가 조금 다른 구슬은 평범한 구슬보다 더 아끼게 됐다.
게임에서 상대 구슬을 따는 규칙을 적용하면 긴장감은 더 커졌다. 잘하면 집에서 가져온 구슬보다 더 많은 구슬을 가지고 돌아갈 수 있었지만, 반대로 아끼던 구슬을 친구에게 넘겨줘야 할 수도 있었다. 처음에는 재미로 시작했어도 몇 번 연속해서 지면 마음이 조급해졌고, 다음 판에서는 어떻게든 되찾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가락으로 구슬을 튕기는 방법에도 각자의 습관이 있었다. 엄지와 검지를 이용해 힘껏 튕기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바닥 가까이에서 방향을 정확히 맞추는 친구도 있었다. 잘하는 친구는 구슬 사이의 거리와 흙바닥의 기울기까지 살피는 것처럼 보여 부러움을 샀다. 한 번 멋지게 상대 구슬을 맞히면 주변에서 감탄이 나오고, 그 반응 때문에 더 잘하고 싶은 욕심도 생겼다.
결국 구슬치기의 재미와 다툼은 꽤 가까운 곳에 있었다. 가지고 싶은 구슬이 걸려 있고 친구들이 승부를 지켜보는 상황에서는 평소보다 결과에 예민해지기 쉬웠다. 지금 보면 작은 유리구슬 몇 개였지만 당시에는 내가 모은 재산이자 친구들에게 보여 줄 수 있는 자랑거리였기 때문에 승패가 훨씬 크게 느껴졌다.
선 하나와 구슬의 위치를 두고 판정이 엇갈렸다
다툼이 가장 쉽게 생기는 순간은 누가 보아도 분명한 결과보다 애매한 상황이었다. 구슬이 선에 걸쳐 있었는지 완전히 밖으로 나갔는지, 상대 구슬을 정확히 맞힌 것인지 옆의 돌을 건드린 것인지가 문제가 됐다. 한 사람의 눈에는 분명히 성공한 장면인데 바로 옆에 있던 친구는 아니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었다.
구슬치기는 심판이 따로 있는 놀이가 아니었기 때문에 결국 함께 놀던 아이들이 판정을 내려야 했다. 그런데 시작할 때 세부 규칙을 정확히 정하지 않았다면 서로 자신에게 익숙한 방식이 당연한 규칙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아까는 이렇게 했잖아”라는 말과 “원래는 그렇게 하는 게 아니야”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하면 구슬의 위치보다 자존심의 문제가 되기 쉬웠다.

한쪽에서는 분명히 구슬을 맞혔다고 말하고 다른 쪽에서는 살짝 비켜 갔다고 주장하면 같은 장면을 다시 확인할 수도 없었다. 지금처럼 영상을 돌려볼 방법이 없으니 결국 기억과 주변 친구들의 증언에 의존해야 했다. 억울하다고 느낀 사람은 목소리가 커지고, 상대는 거짓말쟁이 취급을 받는 것 같아 더 강하게 반박하면서 작은 판정 하나가 말다툼으로 번졌다.
지금 돌아보면 누구 한 명이 일부러 속이려고 했다기보다 각자가 본 장면과 알고 있던 규칙이 달랐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어린 마음에는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데 친구가 인정하지 않는다는 사실 자체가 서운했다. 구슬 하나를 잃는 것보다 친구가 내 말을 믿지 않는다는 느낌 때문에 감정이 더 오래 남기도 했다.
구경하던 친구들이 편을 들면서 다툼이 더 커지기도 했다
구슬치기에는 직접 게임을 하지 않는 친구들도 주변에 모여 있었다. 누가 잘하는지 구경하거나 다음 차례를 기다리던 친구들이 애매한 판정이 나오면 자연스럽게 의견을 내기 시작했다. “내가 봤는데 맞았어”라고 한 사람이 말하면 다른 친구는 반대쪽 상황을 봤다며 다른 주장을 내놓았다. 두 사람 사이의 문제가 여러 사람의 문제로 커지는 순간이었다.
평소 더 친한 친구의 편을 드는 경우도 있었다. 처음에는 구슬이 선을 넘었는지를 이야기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누가 평소에도 반칙을 많이 한다거나 지난번 게임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지금의 문제와 관계없는 과거의 서운함이 섞이면 해결은 더욱 어려워졌다. 놀이가 멈춘 채 모두가 자기 주장만 하는 시간이 길어지기도 했다.
반대로 주변 친구가 다툼을 멈추게 해 주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두 사람이 계속 우기면 가운데 있던 친구가 구슬을 원래 자리에 놓고 이번 판만 다시 하자고 제안하거나, 누구의 구슬인지 확인한 뒤 다음부터 적용할 규칙을 새로 정했다. 완벽하게 누구의 주장이 맞았는지를 가리지 못하더라도 게임을 계속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했다.

아이들끼리 하는 놀이에는 어른이 항상 옆에서 판단해 주지 않았다. 그래서 서로 다투고 중재하고 다시 합의하는 과정까지 놀이의 일부가 되었다. 순간적으로는 편을 들어 주지 않은 친구에게 섭섭하기도 했지만, 모두가 한쪽 주장만 고집하면 결국 구슬치기 자체를 계속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
다시 함께 놀기 위해 규칙을 더 분명하게 정했다
크게 다툰 뒤에는 잠시 서로 말을 하지 않거나 각자 집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다음 날이 되면 같은 골목에서 다시 마주치고, 결국 또 함께 놀게 됐다. 구슬치기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많았고 다른 놀이를 하더라도 늘 같은 사람들이 모였기 때문에 한 번의 다툼으로 관계를 완전히 끊기는 어려웠다.
비슷한 문제가 다시 생기지 않게 하려고 놀이를 시작하기 전에 규칙을 더 자세히 정하기도 했다. 선에 조금이라도 걸치면 안으로 볼지 밖으로 볼지, 구슬을 맞힌 뒤에는 어디에서 다음 차례를 시작할지, 따낸 구슬을 실제로 가져갈지 게임이 끝나면 돌려줄지를 미리 확인했다. 바닥에 그린 선도 흐려지면 다시 선명하게 그리고 모두가 같은 상태를 본 뒤 시작했다.
그렇게 해도 다툼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승부가 있는 놀이에서는 누구나 이기고 싶고, 자신에게 불리한 결과를 받아들이는 일은 어린아이에게 더욱 어려웠다. 다만 한 번 다퉈 본 뒤에는 목소리를 높이기 전에 다른 친구가 어떻게 봤는지 묻거나, 애매하면 이번 판을 다시 하자는 방법을 떠올릴 수 있었다. 놀이는 조금씩 더 공정해졌고 친구 사이의 약속도 구체적으로 변했다.
지금 생각하면 구슬치기를 하며 배운 것은 정확히 구슬을 맞히는 기술만이 아니었다. 함께 놀려면 같은 규칙을 알고 있어야 하고, 의견이 다를 때는 어느 한 사람이 무조건 이기는 방식보다 모두가 다시 참여할 수 있는 해결책이 필요했다. 당시에는 구슬 하나 때문에 싸웠다고 생각했지만, 그 과정에서 약속과 양보가 왜 필요한지를 몸으로 경험하고 있었다.
친구들과 구슬치기를 하며 생긴 다툼은 당시에는 꽤 심각한 사건처럼 느껴졌다. 아끼던 구슬을 잃었다는 억울함이나 친구가 내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는 섭섭함 때문에 집에 돌아가서도 마음이 풀리지 않는 날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누가 몇 개를 따갔는지는 거의 기억나지 않고, 흙바닥에 둘러앉아 함께 구슬을 튕기던 모습이 더 선명하게 남는다.
구슬치기는 승부가 있었기에 재미있었고 바로 그 승부 때문에 다툼도 생겼다. 규칙을 다시 정하고, 친구의 설명을 듣고, 한 번 더 기회를 주면서 관계를 회복하는 과정 역시 놀이 안에 있었다. 작은 구슬 몇 개를 사이에 두고 웃고 화내고 다시 친구가 되었던 경험은 골목에서 배운 또 하나의 생활 규칙이었다.
요즘 구슬을 보면 당시의 승패보다 흙바닥 위에서 부딪히던 맑은 소리가 먼저 떠오른다. 그렇게 아꼈던 구슬도 결국 어디로 갔는지 모르지만 함께 놀던 기억과 다퉜다가 다시 웃었던 장면은 남아 있다. 어린 시절의 구슬치기가 특별했던 이유는 게임의 규칙보다 그 안에서 친구들과 관계를 만들어 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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