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문제집이 필요해지면 가까운 동네 서점으로 직접 향하던 때가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작은 서점은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부터 새 책 냄새와 오래된 종이 냄새가 섞여 있었고, 벽을 따라 놓인 나무 책장에는 참고서와 문제집이 빈틈없이 꽂혀 있었다. 필요한 책 한 권을 사러 들어갔을 뿐인데 서가 앞에 서면 생각보다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정확히 어떤 과목의 문제집이었는지까지는 선명하지 않아도, 책등을 하나씩 훑고 몇 권을 꺼내 페이지를 넘겨본 뒤 한 권을 정하던 과정은 기억에 남아 있다. 작은 동네 서점에서 문제집을 샀던 경험은 단순히 책을 구입했던 일이 아니었다. 어떤 책으로 공부할지 직접 선택하고, 그 책을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순간까지가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는 준비처럼 느껴졌던 경험이었다.
문제집 한 권을 사러 가는 일 자체가 작은 일정이었다
문제집을 사야겠다고 생각하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서점에 직접 가는 것이었다. 지금처럼 책 이름을 검색하고 목차와 미리보기를 확인한 뒤 바로 주문하는 방식이 일상적이지 않았던 때에는, 필요한 문제집을 실제로 확인하려면 가까운 서점에 찾아가는 것이 가장 확실했다. 어떤 책이 들어와 있는지, 내가 찾는 학년과 과목의 문제집이 있는지도 서점에 도착한 뒤에야 알 수 있는 경우가 많았다.
작은 동네 서점에 들어가면 바깥 골목과는 분위기가 달라졌다. 형광등 아래로 높은 나무 책장이 이어지고, 참고서와 문제집 사이사이에 공책이나 필기구가 함께 놓여 있는 곳도 있었다. 규모가 크지 않아 몇 걸음만 옮겨도 서점 전체를 돌아볼 수 있었지만, 비슷하게 생긴 문제집이 워낙 많아 원하는 책을 바로 찾는 것은 또 다른 일이었다. 책등에 적힌 학년과 과목을 확인하면서 한 칸씩 눈을 옮기다 보면 자연스럽게 서가 앞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다.
직접 책을 보러 가야 한다는 번거로움에는 그 나름의 장점도 있었다. 문제집을 손에 들었을 때 얼마나 두꺼운지 바로 알 수 있었고, 종이의 느낌이나 글자 크기, 한 페이지에 문제가 얼마나 촘촘하게 들어 있는지도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나치게 두꺼운 책을 보면 시작하기 전부터 부담이 느껴지기도 하고, 적당한 분량의 책을 보면 이번에는 끝까지 풀어볼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문제집의 내용뿐 아니라 실제로 내가 책상에서 펼쳐 놓았을 모습을 상상하며 고를 수 있었다.
그래서 문제집 한 권을 사러 서점에 가는 과정은 이미 공부 준비의 일부였다. 필요한 책을 떠올리고, 직접 찾아가고, 서가 사이를 돌며 후보를 살펴보는 데 시간이 들었다. 지금 기준으로는 조금 느리고 번거로운 방식이지만, 그 시간을 거쳤기 때문에 새 문제집을 손에 들었을 때의 만족감도 더 컸다. 단순히 물건을 배송받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한 권의 책을 내 공부에 들여오는 과정이 있었다.
서가 앞에서 한 권을 고르는 시간이 길어졌다
문제집 코너에 도착했다고 바로 책을 고를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같은 과목이라고 해도 설명이 자세한 책, 문제가 많이 들어 있는 책, 단원별 정리가 눈에 잘 들어오는 책처럼 구성이 조금씩 달랐다. 한 권만 보고 결정하기 어려워 몇 권을 번갈아 펼쳐보는 일이 자연스러웠고, 첫 단원이나 문제 배치를 확인하면서 어느 책이 나에게 덜 부담스러울지 살펴보게 됐다.
문제집 한 권은 사고 나면 며칠만 보고 끝나는 물건이 아니었다. 한번 선택하면 한동안 책상 위에서 계속 마주해야 했기 때문에, 괜히 잘못 골라 손이 가지 않으면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다. 너무 어려워 보이는 문제집은 시작부터 자신감을 떨어뜨릴 것 같았고, 반대로 지나치게 쉬워 보이는 책은 굳이 새로 살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결국 책을 고르는 과정에는 내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스스로 가늠해 보는 일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표지만 멋있다고 선택할 수도 없었다. 안쪽을 펼쳐보면 같은 내용이라도 설명 방식이나 글자 크기가 다르고, 해설이 얼마나 자세한지도 조금씩 차이가 났다. 문제와 문제 사이의 간격처럼 사소해 보이는 부분도 실제로 풀 때는 꽤 중요했다. 빽빽한 페이지를 보면 금세 지칠 것 같고, 정리가 잘된 페이지는 같은 분량이어도 조금 덜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서점에서 직접 책을 펼쳐보는 이유가 바로 이런 차이를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동네 서점의 문제집 코너 앞에서 결정이 늦어졌던 것은 단순히 우유부단해서가 아니었다. 앞으로 계속 풀어야 할 책을 고르는 일이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내게 맞는 것을 찾고 싶었다. 한 권을 꺼냈다가 다시 꽂고 다른 책을 펼치는 과정을 몇 번 반복한 끝에 마음을 정하면, 비로소 ‘이걸로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선택하는 시간이 길었던 만큼 계산대로 가져가는 순간에는 작은 결정을 하나 끝냈다는 묘한 개운함도 있었다.
작은 동네 서점이 문제집을 고르기에 편했던 이유
작은 동네 서점은 대형 서점처럼 선택지가 끝없이 많지는 않았다. 그런데 문제집을 고를 때는 오히려 그 점이 편하게 느껴질 수 있었다. 학생들이 많이 찾는 기본적인 참고서와 문제집이 한 공간에 모여 있었고, 학년이나 과목별 책장이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필요한 코너를 찾아 넓은 매장을 한참 돌아다니지 않아도 몇 걸음 안에서 후보가 될 만한 책들을 살펴볼 수 있었다.
계산대와 책장이 가까운 것도 작은 서점 특유의 모습이었다. 필요한 책의 위치를 찾지 못한 손님이 있으면 서점 주인에게 바로 묻고, 주인은 어느 책장에 있는지 알려주는 장면이 자연스러웠다. 자주 찾는 학생들이 어떤 참고서를 찾는지 서점 주인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온라인 후기나 검색 결과가 선택을 대신하기 전에는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책에 관한 정보를 얻는 방식도 동네 서점의 중요한 역할 가운데 하나였다.
문제집 옆에 공책이나 연필, 지우개 같은 학용품이 함께 놓여 있는 것도 편리했다. 공부를 시작하려고 문제집을 사러 갔다가 필요한 공책까지 함께 챙길 수 있었고, 학생에게 필요한 물건을 한곳에서 해결할 수 있었다. 작은 서점이 동네에 따라 문구점과 비슷한 역할을 겸했던 이유도 이런 생활 방식과 연결되어 있었다. 거창한 쇼핑을 위해 찾아가는 장소라기보다 필요할 때 잠깐 들러 공부에 필요한 것을 챙기는 생활 속 가게였다.
무엇보다 익숙함이 컸다. 몇 번 가본 서점이라면 어느 쪽에 문제집이 있고 어디쯤 계산대가 있는지 굳이 찾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책장 배치가 크게 달라지지 않으면 전에 봤던 책의 위치도 기억났고, 서점이라는 낯선 공간에 들어왔다는 긴장감도 없었다. 온라인 주문의 빠른 검색과는 다른 방식이지만, 익숙한 공간과 가까운 사람을 통해 선택의 부담을 덜 수 있었다는 점에서 작은 동네 서점은 문제집을 사기에 꽤 잘 맞는 장소였다.
새 문제집을 손에 들면 공부를 시작한 기분이 났다
한참 고민한 끝에 책을 고르고 계산까지 마치면 마음이 조금 달라졌다. 아직 한 문제도 풀지 않았는데 새 문제집을 손에 들고 서점을 나오는 순간만큼은 이미 공부를 시작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모서리가 반듯하고 표지에 구김 하나 없는 새 책은 아직 아무 흔적도 남지 않은 상태라서, 앞으로 어떻게 채울지가 온전히 내 몫인 물건처럼 보였다.
새 문제집에는 기대와 부담이 동시에 있었다. 이번에는 미루지 않고 꾸준히 풀어보겠다는 마음이 생기면서도 뒤쪽까지 이어진 많은 페이지를 보면 과연 끝까지 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따라왔다. 첫 장에 이름을 쓰거나 처음 몇 문제를 풀기 시작하는 작은 행동만으로도 책의 분위기는 달라졌다. 서점에서는 여러 사람 가운데 하나가 고를 수 있는 상품이었던 책이, 연필 자국이 생기는 순간부터 내 공부 흔적이 남는 개인적인 책으로 바뀌었다.
물론 새 문제집을 샀다고 해서 항상 마지막 장까지 완벽하게 풀었던 것은 아닐 것이다. 처음의 의욕이 줄어들어 중간에 멈춘 책도 있었을 것이고, 계획보다 진도가 늦어진 적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문제집을 새로 사는 일에는 다시 한번 공부해 보겠다고 마음을 정하는 효과가 있었다. 어떤 교재를 사용할지 직접 고르고 돈을 내서 가져왔다는 사실이 적어도 첫 페이지를 펼치게 만드는 작은 계기가 되어 주었다.

그래서 작은 서점에서 문제집을 샀던 기억은 단순한 구매 경험으로 남지 않는다. 한 권을 찾아 서가를 살피고, 내용과 두께를 비교한 뒤 최종적으로 선택하는 과정 속에는 공부를 시작하기 전의 망설임과 의지가 함께 있었다. 문제집을 고르는 데 들인 시간까지 생각하면 새 책을 가방에 넣는 순간의 만족감도 조금 더 컸다. 책 한 권을 샀다는 것보다 ‘이제 이걸 풀어봐야겠다’고 마음을 정했던 순간이 더 오래 기억되는 이유다.
지금은 문제집을 사는 방법이 훨씬 다양하다. 목차와 미리보기를 온라인에서 확인하고, 다른 사람의 평가를 읽거나 여러 판매처의 가격을 비교한 뒤 집에서 주문할 수도 있다. 필요한 책이 정해져 있다면 직접 매장에 가지 않아도 빠르게 받아볼 수 있다는 점은 분명 편리하다. 하지만 화면으로 책을 고르는 일과 좁은 서가 앞에서 실제 문제집을 꺼내 넘겨보는 일은 같은 선택이라도 기억에 남는 방식이 다르다.
작은 동네 서점에서 문제집을 샀던 경험을 떠올리면 문제집보다 먼저 빽빽한 책장과 종이 냄새, 손에 책을 들고 페이지를 넘기던 장면이 생각난다. 한 권을 고르기 위해 직접 찾아가고, 비교하고, 계산대를 지나 책을 들고 돌아오는 과정이 공부와 일상이 이어지던 방식이었다. 문제집을 끝까지 풀었는지는 시간이 지나면 흐릿해져도, 새 책을 고르며 다시 공부해 보겠다고 마음먹었던 순간만큼은 이상하게 오래 남는다.
'그 시절 생활문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겨울철 교실 난로 위에 도시락을 올려놓던 풍경, 점심시간을 기다리게 한 이유 (0) | 2026.09.05 |
|---|---|
| 첫 월급을 받고 가장 먼저 샀던 물건, 아빠 전기면도기 (0) | 2026.09.04 |
| 얼음과자를 반으로 나눠 먹었던 어린 시절, 하나를 둘이 먹어도 즐거웠던 이유 (0) | 2026.09.04 |
| 부모님을 따라 시장에 가는 것이 즐거웠던 이유, 장보기가 작은 여행 같았던 시절 (0) | 2026.09.03 |
| 종이인형 옷을 직접 오려 입혔던 기억, 가위질까지 놀이였던 시절 (0) | 2026.09.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