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식이 당연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점심시간이 되기 전부터 도시락 뚜껑을 열 생각에 마음이 먼저 바빠지곤 했다. 아침에 집에서 싸 온 밥과 반찬이 점심까지 그대로 남아 있었고, 친구들이 어떤 반찬을 가져왔는지 슬쩍 비교하는 재미도 있었다. 도시락 반찬은 집집마다 달랐지만, 달걀과 소시지처럼 눈에 띄는 반찬부터 김치와 멸치볶음처럼 자주 등장하는 밑반찬까지 몇 가지 음식은 세대를 넘어 오래 기억에 남았다.다만 ‘인기 반찬’의 모습은 시대와 가정 형편에 따라 달랐다는 점도 함께 봐야 한다. 점심시간의 기억을 따라가 보면 어떤 반찬이 왜 사랑받았는지뿐 아니라, 당시 학교와 가정의 생활 방식이 지금과 어떻게 달랐는지도 함께 보인다.달걀 프라이와 계란말이가 도시락에서 특별했던 이유1970년대의 도시락을 떠올리면 흰밥 ..
재래시장에 들어서면 장을 보기 전부터 눈과 귀가 먼저 바빠졌다. 좁은 골목 양쪽으로 채소와 과일, 생선과 반찬이 가득 놓여 있었고, 물건을 고르는 사람들과 손님을 부르는 상인들의 목소리가 한꺼번에 섞여 들렸다. 어린 시절 가족을 따라 시장에 갔던 기억을 떠올리면 무엇을 샀는지보다 그 복잡하고 활기찬 풍경이 먼저 생각난다.가족과 함께 시장을 걷는 일은 단순히 필요한 식재료를 사러 가는 시간이 아니었다. 어른들이 물건을 고르는 모습을 옆에서 보고, 장바구니가 하나씩 무거워지는 과정을 따라다니며 자연스럽게 생활의 여러 모습을 배웠다. 지금처럼 필요한 물건을 검색하고 빠르게 결제하는 장보기와 달리, 재래시장에서는 걷고 보고 묻고 비교하는 과정 자체가 장보기의 중요한 부분이었다.시장 입구에 들어서면 장보기의 속도..
처음 자취를 시작하기 전에는 혼자만의 공간이 생긴다는 사실이 가장 크게 느껴졌다. 늦게 자든, 무엇을 먹든, 방을 어떻게 꾸미든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는 것이 자유롭게만 보였다. 하지만 막상 생활을 시작하고 나니 자유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그동안 다른 누군가가 자연스럽게 해 주고 있던 수많은 일이었다.밥 한 끼를 먹는 일부터 빨래와 청소, 공과금 납부, 장보기까지 모두 내가 챙기지 않으면 그대로 멈춰 있었다. 각각은 사소한 일처럼 보였지만 매일 반복되면서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돈을 필요로 했다. 처음 자취하며 힘들었던 것은 특별한 사건보다 이런 작은 생활 문제가 끊임없이 이어진다는 사실이었다.생활비는 월세만 계산한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자취를 시작하기 전에는 가장 큰 지출이 월세라고 생각하..
명절이 가까워지면 맛있는 음식이나 오랜만에 만날 친척들보다 먼저 떠오르던 일이 하나 있었다. 낮에는 북적이는 분위기가 즐거웠지만, 밤이 되면 그 집에서 그대로 자야 한다는 사실이 어린 마음에는 꽤 크게 느껴졌다. 평소 쓰던 내 이불도, 익숙한 방도 아닌 곳에서 사촌들과 한 방에 누워 잠을 청해야 했기 때문이다.낮 동안에는 여러 사람이 드나들고 음식 냄새와 이야기 소리가 집 안을 가득 채웠다. 하지만 밤이 깊어 불이 꺼지고 낯선 천장과 문틈의 빛이 보이기 시작하면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친척집에서 자는 일은 명절의 당연한 일정처럼 받아들였지만, 어린 시절의 나에게는 설렘과 불편함이 묘하게 섞인 특별한 경험이었다.명절 저녁, 친척집에 사람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명절날 친척집에 도착하면 평소 조용하던 ..
고무줄놀이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누군가 앞에 서서 규칙을 차근차근 설명해 주던 모습이 아니다. 이미 놀고 있는 친구들 옆에 서서 발이 어디로 들어가는지, 줄을 언제 밟고 언제 넘어야 하는지를 눈으로 따라가다가 어느 순간 나도 줄 안으로 들어갔던 과정이 먼저 떠오른다. 처음에는 동작 이름도 몰랐고 왜 그 순서대로 움직여야 하는지도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몇 번 보고 몇 번 틀리다 보면 몸이 먼저 다음 동작을 기억했다.고무줄놀이는 그렇게 규칙을 외워서 시작하는 놀이보다 함께 놀면서 규칙을 알아 가는 놀이에 가까웠다. 친구가 성공하면 그대로 따라 해 보고, 줄에 걸리면 어디에서 틀렸는지 옆에서 알려 주는 말을 듣고 다시 시도했다. 높이가 올라갈수록 방법이 달라지고 노래가 바뀌면 발동작도 달라졌지..
학교가 끝난 뒤 친구들과 어디로 갈지 특별히 정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발길이 향하던 곳이 있었다. 김이 서린 유리창 너머로 빨간 떡볶이 양념이 보이고, 주방에서는 라면 끓는 냄새가 퍼지던 동네 분식집이었다. 여러 메뉴를 마음껏 시킬 수 있는 형편이 아니어도 크게 아쉽지는 않았다. 라면 한 그릇을 가운데 놓고 젓가락을 번갈아 뻗으며 먹다 보면 배를 채우는 것보다 친구들과 함께 앉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더 중요하게 느껴졌다.그때의 라면 한 그릇은 지금처럼 혼자 빠르게 먹는 간편식과는 조금 다른 기억으로 남아 있다. 누가 더 많이 먹었는지 따지기보다 국물 한 숟갈, 면 한 젓가락을 자연스럽게 나누던 풍경 속에는 당시 학생들의 용돈 사정과 분식집 문화, 그리고 친구 관계가 함께 들어 있었다. 지금 떠올려 보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