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아르바이트를 하던 날에는 평소라면 쉽게 했을 행동도 갑자기 어렵게 느껴졌다. 유니폼이나 앞치마를 정리하고, 누가 무엇을 시키는지 놓치지 않으려고 주변을 계속 살폈다. 손님 앞에서는 자연스럽게 보이고 싶었지만, 머릿속에서는 방금 들은 업무 순서를 잊지 않으려고 같은 말을 몇 번씩 되뇌고 있었다.그날 내가 어떤 부분에서 실수했는지는 시간이 지나며 세부가 흐릿해졌다. 다만 해야 할 순서를 놓쳤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순간 얼굴이 뜨거워지고, 주변 사람들이 모두 내 실수를 본 것처럼 느껴졌던 감각은 남아 있다. 첫 아르바이트에서의 실수는 크기보다도 일하는 사람으로서 처음 평가받는다는 부담 때문에 더 크게 다가왔다.그날은 단순히 일을 잘못 처리한 하루가 아니었다. 모르는 것을 어떻게 물어봐야 하는지, 실수가 생..
해가 조금씩 기울기 시작하면 골목 곳곳에서 친구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리던 시절이 있었다. 특별한 장난감이 없어도 몇 명만 모이면 숨바꼭질을 시작할 수 있었고, 술래가 벽을 보고 숫자를 세는 동안 나머지는 담장과 대문, 계단과 전봇대 사이로 흩어졌다. 평소 매일 지나던 동네가 그 순간에는 누구도 쉽게 찾을 수 없는 거대한 놀이판처럼 달라졌다.내가 떠올리는 골목 숨바꼭질의 재미는 단순히 몸을 숨기고 찾아내는 데만 있지 않았다. 어디까지를 놀이 구역으로 할지 정하고, 친구들의 성격을 생각해 숨을 곳을 고르며, 술래의 발소리가 가까워질 때 숨을 죽이는 과정 전체가 놀이였다. 정해진 무대도 복잡한 도구도 없었지만 같은 골목이 매번 다른 상황을 만들어 주었다.당시의 골목은 자동차가 지금보다 적고 이웃끼리 얼굴을 아..
학교 종이 울리고 교문을 나서면 배보다 먼저 코가 반응하던 골목이 있었다. 큰 냄비나 넓은 철판에서 끓는 떡볶이 양념 냄새가 바람을 타고 퍼지면, 집에 가던 발걸음이 자연스럽게 가게 앞으로 향했다. 주머니 속 동전을 세어 보고 친구들과 얼마씩 보탤지 눈빛으로 정하던 순간부터 간식 시간은 이미 시작된 셈이었다.지금은 떡볶이를 배달로 주문하거나 다양한 재료와 맵기를 골라 먹을 수 있지만, 학교 앞에서 먹었던 한 접시는 이상할 만큼 또렷하게 기억된다. 그 맛이 특별했던 이유는 조리법 하나로만 설명하기 어렵다. 수업을 마친 직후의 허기, 친구들과 둘러선 좁은 자리, 튀김을 떡볶이 국물에 찍어 먹던 방식과 가게 앞 골목의 소리가 한꺼번에 맛에 섞여 있었기 때문이다.내가 떠올리는 학교 앞 떡볶이는 완벽하게 정돈된 ..
보고 싶었던 프로그램의 본방송을 놓치고도 “재방송 때 보면 되지”라고 마음을 달랬지만, 그 재방송마저 지나간 뒤에는 정말 막막해지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처럼 검색창에 제목을 입력해 곧바로 다시 보거나, 놓친 장면부터 이어서 재생할 수 없었다. 정해진 시간에 TV 앞에 앉지 못하면 이야기를 따라갈 기회가 사라졌고, 다음 날 친구들의 대화만 들으며 장면을 상상해야 했다.정확히 어떤 방송을 놓쳤는지는 기억마다 다르지만, 편성표를 확인하고 시계를 보며 한 번뿐인 기회를 기다리던 감각은 비슷했다. 재방송은 본방송을 놓친 사람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처럼 여겨졌고, 그것까지 놓치면 비디오 녹화나 친구의 설명에 기대야 했다. 불편한 환경이었지만 그만큼 방송 한 편을 대하는 집중력과 기다림은 지금보다 훨씬 컸다.재방송 ..
학교가 끝나면 운동장보다 먼저 문방구 진열대를 확인하던 아이들이 있었다. 공책이나 연필을 사러 들어갔다가도 계산대 옆에 놓인 딱지, 구슬, 팽이와 스티커 앞에서 발걸음이 멈췄다. 손에 쥔 용돈으로 무엇을 살지 고민하는 몇 분 동안 문방구는 작은 장난감 가게이자 친구들의 유행이 모이는 장소가 되었다.학교 앞 문방구에서 가장 많이 팔렸던 장난감을 하나만 고르기는 어렵다. 지역과 시기, 학교의 유행에 따라 인기 품목이 달랐고, 전국 판매량을 보여 주는 통계도 쉽게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만 내가 떠올리는 당시의 풍경과 주변에서 흔히 나누는 기억을 겹쳐 보면, 종이딱지처럼 값이 비교적 낮고 바로 함께 놀 수 있는 장난감이 가장 꾸준히 손을 탔다.딱지만 인기 있었던 것은 아니다. 유리구슬과 팽이는 실력을 겨..
학교가 끝난 뒤에도 마음 한쪽에는 시계가 걸려 있던 때가 있었다. 친구들과 놀고 있어도 보고 싶은 TV 프로그램의 시작 시간이 가까워지면 자연스럽게 집에 갈 준비를 했다. 한 번 늦으면 앞부분을 놓치고, 그날 방송을 다시 볼 방법도 마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정확한 프로그램 이름과 방송 시각은 기억에서 흐릿해졌지만, 시간을 확인하며 책가방을 챙기고 집 쪽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던 감각은 남아 있다. 대문을 열자마자 가방을 내려놓고 거실로 향하거나, 화면이 이미 시작되었는지 먼저 살피는 일이 그날의 작은 목표였다. 보고 싶은 TV 프로그램 때문에 귀가 시간을 맞추던 시절에는 방송 편성표가 아이들의 놀이 시간과 가족의 저녁 풍경까지 움직이는 생활표처럼 작용했다.방송 시간을 기억하며 하루의 순서를 정했다당시에는 원..